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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어진길 29 (풍남동3가 33-4) 일대


마을유래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도로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마을설명


전주한옥마을은 한국의 전통 건물인 한옥이 700여 채나 밀집되어 있어 한국 고유의 멋이 느껴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전주부성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지어 살기 시작해 그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팔작지붕에 검은 기와가 멋스러운 한옥들이 관람객을 포근하게 맞아준다. 골목 사이사이를 느긋하게 걸어도 좋지만, 각종 문화·체험시설이 즐비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공예품전시관에서는 전주한지, 합죽선, 태극선 같은 지역 특산 공예품을, 전통술박물관에서는 전국 명인들이 만든 전통 술을 구경할 수 있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옛 선비들이 즐겼던 시서화를 경험할 수 있다. 오목대에서는 한옥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문어꼬치, 칼국수, 수제만두 등 먹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한옥마을은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한옥마을 입구 태조로에는 드라마 ‘용의 눈물’ 촬영지인 경기전(사적 제339호)이 있다. 경기전 건너편에는 영화 ‘약속’을 찍은 곳으로 유명한 전동성당이 있다.




전주 경기전

 

종 목  사적  제339호 
지 정 일 1991.01.09
소 재 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102)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어진과 보물 제1578호인 경기전 정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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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종 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16호

지 정 일 1974.09.24
소 재 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6 (교동 산1-3)
시 대 조선시대


오목대는 1380년(우왕 6)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으로 1900년(고종 37)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가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경기전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곳,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는데, 옛날에는 동쪽의 승암산에서 오목대까지 산이 이어져 있었으나 전라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맥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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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가볼만한 곳)


1.남고사


소재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동서학동 724)


남고산성 내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8년에 명덕화상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선종계의 사찰이 되었다.


고덕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고덕산남고사로 불리고 있는 이 사찰은 남고연국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남고연국사는 신라문무왕 8년(668)에 명덕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연국이라는 명칭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산성사찰에 많이 사용되었던 명칭이라고 한다.


남고사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남고산성은 능선을 따라 억경대와 만경대, 천경대 등 세봉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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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학혁명기념관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4 (풍남동3가 76-2)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숭고한 혁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으로 상설전시장과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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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고사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정여립로 1010-90 (만성동 산84)


전주시 팔복동 2공단에서 이서행 도로로 2km 지나 전주시 서쪽 황방산 방향으로 500m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후백제 견훤이 완주에 도읍을 정하고 왕 즉위시(908년)에 명덕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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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남제일문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전주 인터체인지를 지나 전주 초입에 들어서면 호남제일문이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인 호남제일문의 현판은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로 전주의 과거에 대한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포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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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주 풍남문


종 목  보물  제30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2가 83-4 
시 대 조선시대


전주를 상징하고 있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전주의 남문은 조선 5백년의 역사 명맥을 잇는 수도 한성부의 상징적인 숭례문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선조 30년(159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그해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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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덕진공원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2가 1314-4


전주는 마한시대 이래 호남지방에서 규모가 큰 고을로 그 이름은 마한의 원산성에서 유래했다. 40여년 간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라는 이유로 완산유수부로 개칭되기도 했다.


전주에서 볼거리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덕진공원에 피는 연꽃이다. 그 만큼 덕진공원 연못은 전주의 명물이다. 전주 IC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팔달로변에 위치한 덕진공원은 고려시대에 형성된 자연호수가 1978년 4월 시민공원 결정고시에 의거, 도시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취향정과 더불어 유서깊은 곳이다.


4만 5천평의 경내에는 남쪽으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연못과 북쪽의 보트장을 동서로 가로지른 현수교가 그 사이를 양분하고 있다. 그윽히 풍기는 연못중앙으로 아치형 현수교를 거닐면서 한없는 시정에 젖어볼 수 있다. 특히, 대대적으로 정비공사를 하여 1998년부터 재개장한 공원의 특색은 마운딩 시공으로 향촌의 작은 숲(언덕)을 연상케 하고, 전통 정자와 창포늪을 조성하여 역사성을 극대화하였고 또한 인공폭포와 목교를 설치하여 자연친화시설로 시민의 정서에 맞도록 조성하였으며 단오절에는 연못물로 부녀자들이 아침 일찍 머리를 감고 한해 건강을 기원하는 단오 창포물 잔치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덕진공원 안에는 "어린이 헌장", "신석정 시비", "김해강 시비", "전봉준 장군상" 등 9개의 석조 기념물이 조성되어 연꽃 향기와 더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주의 정취를 안겨주는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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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주향교


종 목  사적  제379호 
지 정 일 1992.12.23
소 재 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교동 26-3) 외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명확한 기록은 없고 구전에 의하면 당초 경기전 북편에 있었으며, 경기전을 세우자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1410년(태종 1년)에 중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합심하여 선조 36년(1603)에 현 위치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 곳 배향 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동일하다. 현재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계성사, 동무, 서무, 장판각, 만화루, 동재, 서재 등이 있으며 대성전은 공자를 주벽으로 50인의 유학 성인 위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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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맛집 대신에 전주의 유명한 음식을 올려드립니다.


(전주의 유명한 음식)


1.전주비빔밥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을 비벼 먹는 것으로 각 지방마다 특산 농산물의 사용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특히나 전주, 진주, 해주에서 향토명물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그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은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하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농산물의 사용, 장맛 그리고 음식에 드리는 깊은 정성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 하겠다.

 

전주의 콩나물은 전국 제일의 맛을 자랑하는데 이로인해 자연히 콩나물을 사용한 전주콩나물비빔밥 이라고까지 부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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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콩나물 국밥

 

나물국밥은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곁들여 펄펄 끓여 만든 음식으로 뒷맛이 좋고 뱃속을 편안하게 하여 해장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주 한잔과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여 애주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음식이다.

 

전국 여러도시 가운데에서도 특히 전주의 콩나물이 유명한 것은 기후, 수질 등이 콩나물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고, 또 풍토병인 디스토마로 인한 토혈을 예방하거나 각기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전주 콩나물은 본래 임실지방에서 나는 서목태,일명 쥐눈이 콩으로 잔뿌리 없이 외뿌리로 키우는 것이 요령이며 다 자라기 전에 뽑아 사용하므로 질기지 않고 연하다. 이러한 전주의 콩나물을 이용한 음식의 하나가 콩나물국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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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주백반

 

전주사람들과이 과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그것을 보여주는 상차림이 있다면 백반이다.

 

백반은 흰밥에 국과 반찬을 곁들여 파는 한 상의 음식이다. 소박한 한정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주백반은 반찬 가지수가 많기로 유명하다.전주여행의 입맛이 행복한 맛 여행이라는 뜻이 여기에 있다.전주는 과거 전주부성이 있었고, 그곳에는 전라감사가 거주하는 감영이 있었다.그 감영터(구, 전북도청)에는 지금도 전통을 이어받은 크고 작은 백반집이 많다.

 

전주백반은 사대문을 중심으로 전주 토박이들이 즐겨 먹었던 전통음식이다. 전주대 송화섭교수는 '진정한 전주음식의 정통성은 전주백반에서 찾을 수 있다. 전주 음식의 구분은 읍성 안팎으로 세운다면 콩나물국밥은 성밖의 음식이고, 백반은 처음부터 있었던 성안의 음식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샐러리맨들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백반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많다. 그중 (구)전북도청과 전주시청 부근, 전주덕진공원 앞 등에 꽤 괜찮은 백반집들이 모여 있다. 전주가정식 백반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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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오모가리탕

 

오모가리란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다.

 

사람수에 따라 크고 작은 오모가리에 메기, 쏘가리, 피라미, 동자개(빠가사리), 잡고기를 구별해 얼큰하게 끓여낸 매운탕이 오모가리탕이다.

 

미식가의 입맛을 돋우어주는 오모가리탕은 지극한 정성과 솜씨가 결정체다.민물고기와 채소, 양념을 적당히 섞어 보글보글 끓인 국물과 양념이 배어있는 물고기의 맛은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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